커밋 메시지 'fix bug', 'update', 'asdf': 정신 없음의 흔적
- 05 Dec, 2025
커밋 메시지 ‘fix bug’, ‘update’, ‘asdf’: 정신 없음의 흔적
오늘 아침에 git log를 봤다.
지난 3일치 커밋 메시지가 이렇다.
“fix bug” “update” “asdf” “quick fix” “really fix this time” “fuck” “revert fuck”
…이게 프로덕션이다.

git log가 내 정신 상태
커밋 메시지를 보면 그날 내 상태가 보인다.
오전 10시: “feat: 사용자 프로필 API 구현” → 정신 멀쩡할 때다.
오후 3시: “fix profile bug” → 피곤해지기 시작.
저녁 7시: “update” → 저녁 먹고 와서 뭐 했는지 기억 안 남.
밤 11시: “asdf” → 의식의 흐름.
새벽 2시: “please work” → 간절함.
새벽 3시: “I HATE THIS” → 분노.
새벽 4시: “final fix” → 거짓말.
이게 3년차 풀스택 개발자의 커밋 히스토리다. 자랑스럽다.
의미 모를 메시지의 이유
왜 이렇게 되는가.
첫째, 시간이 없다. 커밋 메시지 쓸 정신이 없다. 대표가 “이거 언제 돼요?” 슬랙에 5번째 멘션이다. 일단 커밋하고 푸시한다. 메시지는 나중에. 근데 나중은 오지 않는다.
둘째, 정신이 없다. 동시에 3개 작업 중이다. 프론트 버그 고치다가 백엔드 API 수정하다가 DB 인덱스 추가하다가. 뭘 커밋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update” 치고 엔터.
셋째, 새벽이다. 오후 2시에 시작한 ‘간단한 수정’이 밤 11시에 끝났다. 연쇄 버그였다. 피곤하다. 커서가 커밋 메시지 창에 깜빡인다. 손이 알아서 “fix” 친다.
넷째, 혼자다. 코드 리뷰 없다. 컨벤션 지킬 사람도 없다. 나 말고 git log 볼 사람이 없다. 그래서 대충 쓴다. 근데 3개월 뒤 내가 본다. 그리고 후회한다.

새벽 커밋의 특징
새벽 2시 이후 커밋은 특별하다.
메시지가 짧아진다. “fix”에서 “f”까지 진화한다. 타이핑할 기력도 없다.
오타가 늘어난다. “fxi bug”, “updaet”, “commti”. 백스페이스 누를 힘도 없다.
감정이 들어간다. “please”, “why”, “help”, “fuck”. 코드에 하소연한다.
종교가 등장한다. “god please”, “jesus christ”, “holy shit it works”. 신에게 간구한다.
어제 새벽 3시 커밋이다.
“why is this even a bug” “ok this should work” “nope” “maybe now” “FINALLY”
5개 연속 커밋. 같은 버그. 40분 걸렸다. 원인은 오타였다. 변수명 “user”를 “usr”로 썼다.
‘asdf’의 의미
‘asdf’는 특별하다.
왼손 홈포지션이다. 아무 생각 없이 친다. 근데 자주 쓴다. 지난달에만 12번 썼다.
처음엔 부끄러웠다. 지금은 자연스럽다. ‘asdf’는 내 정신 상태를 정직하게 표현한다. “지금 나 아무 생각 없음. 그냥 커밋함.”
동료 개발자 있었을 때는 안 썼다. 코드 리뷰 있었으니까. “커밋 메시지 좀 제대로 써주세요” 들으니까.
지금은 혼자다. ‘asdf’ 맘껏 쓴다. 자유다. 슬픈 자유다.
git blame 보면 웃긴다. 3개월 전 코드에 ‘asdf’ 커밋이다. 뭔지 모른다. 다시 읽어야 한다. 과거의 나를 욕한다. “메시지 좀 써놓지.” 근데 오늘도 ‘asdf’ 쓸 것 같다.
컨벤션은 어디로
입사할 땐 다짐했다.
“커밋 메시지 컨벤션 지키자. feat, fix, refactor 구분하자. 이슈 번호 달자.”
1주일 갔다.
지금 컨벤션은 이렇다.
- 오전: 제대로 씀
- 오후: 대충 씀
- 저녁: 안 씀
- 새벽: 욕함
feat, fix는 가끔 쓴다. 기분 좋을 때. refactor는 본 지 오래됐다. 리팩토링할 시간이 어딨나.
이슈 번호는 없다. 이슈 트래커 쓸 여유가 없다. 슬랙 DM이 이슈 트래커다. 대표 톡이 백로그다.
이모지도 시도했다. ✨, 🐛, 🔥. 3일 갔다. 귀찮다. 지금은 문자만. 최소한만.

역대급 커밋들
기억에 남는 커밋들이 있다.
가장 정직한 커밋: “I have no idea what I’m doing”
새벽 4시. 스택오버플로우 코드 복붙했다. 작동했다. 이유는 모른다. 정직하게 적었다.
가장 긴 커밋: “fix bug fix bug fix bug fix bug fix bug”
복붙했다. 손이 컨트롤 안 됐다. 피곤해서.
가장 짧은 커밋: ”.”
마침표 하나. 엔터 치려다 점 찍었다. 그냥 푸시했다. 돌아가서 고칠 기력이 없었다.
가장 화난 커밋: “WHO WROTE THIS CODE oh wait it was me”
3개월 전 내 코드였다. 똑같은 버그를 똑같이 고쳤다. 커밋 메시지도 똑같았다. “fix user bug”. 학습 능력 제로.
가장 슬픈 커밋: “goodbye clean code”
기술 부채 쌓는 거 알면서 땜질했다. 시간이 없어서. 나중에 고치자. 근데 나중은 안 온다.
동료가 보면
전 직장 동기가 물었다.
“너희 회사 코드 퀄리티 어때?”
git log 보여줬다. 말없이 봤다. 그리고.
”…너 괜찮아?”
괜찮지 않다.
근데 뭐 어쩌나. 혼자 하는데. 서비스는 돌아가는데. 커밋 메시지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나중에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
나중에 사람 뽑으면 창피할 것 같다. 신입이 와서 git log 보면. “선배님 이게 뭐예요?” 할 것 같다.
“음… 그때 많이 바빴어. 하하.”
변명할 것 같다. 근데 지금도 바쁘다. 6개월 뒤도 바쁠 것 같다.
반복되는 메시지
같은 메시지를 반복해서 쓴다.
“fix login bug” - 이거 7번 커밋했다. 로그인 버그가 7번 났다. 아니다. 근본 원인을 안 고쳤다. 증상만 고쳤다. 시간이 없어서.
“update API” - 이거 21번 썼다. 뭘 업데이트했는지 모른다. 그냥 뭔가 바뀌었다.
“quick fix” - 빠른 수정은 없었다. 다 2시간씩 걸렸다. 거짓말이다.
“minor change” - 마이너가 아니었다. DB 스키마 바꿨다. 이거 메이저다. 근데 인정하기 싫었다.
“temp” - 임시 수정. 근데 3개월 째 프로덕션이다. 영구적 임시다.
반복되는 메시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근본 문제를 안 고친다. 시간이 없어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PR 없는 세상
전 회사는 PR 필수였다.
커밋 3개 이상 쌓이면 안 됐다. 바로 PR 올렸다. 리뷰 받았다. “커밋 메시지 수정해주세요.” 피드백 받았다. 귀찮았는데 배웠다.
지금은 PR이 없다.
혼자니까. 리뷰할 사람이 없으니까. main 브랜치에 바로 푸시한다. 무법지대다.
자유롭다. 근데 무섭다. 견제가 없으니까. 내 실수를 못 잡는다. 커밋 메시지도 점점 막 쓴다.
가끔 스스로 리뷰한다. “이거 좀 이상한데.” 근데 고칠 시간이 없다. “나중에.” 그리고 잊는다.
브랜치 전략도 없다. feature 브랜치? develop 브랜치? 그런 거 없다. main 하나. hotfix도 main에. 전부 main에.
깃플로우는 교과서에나 나온다. 현실은 메인 브랜치 하나로 모든 걸 한다.
미래의 나에게
3개월 뒤 내가 볼 것이다.
오늘 ‘asdf’로 커밋한 코드를. 그리고 욕할 것이다. “이게 뭔 코드야.” 근데 수정 못 한다. 또 시간이 없어서.
6개월 뒤 신입이 올지도 모른다. 온보딩하면서 git log 보여줘야 한다. “이게 우리 커밋 히스토리예요. 하하.” 웃으면서 말할 것이다. 근데 웃음이 나올까.
1년 뒤 이직할지도 모른다. 포트폴리오 정리하면서 이 레포를 볼 것이다. 공개할 수 없다. 창피해서. private으로 둘 것이다. 그리고 새로 만들 것이다. 깨끗한 커밋 히스토리로.
미래의 나에게 미안하다. 근데 지금의 나도 힘들다. 서비스는 돌려야 하고. 장애는 고쳐야 하고. 기능은 만들어야 하고. 커밋 메시지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래도 알고는 있다. 이게 잘못됐다는 거. 언젠가 대가를 치를 거라는 거. 근데 오늘은 아니다. 내일도 아니다. 그래서 오늘도 ‘asdf’ 친다.
그래도
가끔 제대로 쓴다.
기분 좋은 날. 새 기능 완성한 날. 리팩토링 한 날. 그럴 땐 정성껏 쓴다.
“feat: 사용자 알림 시스템 구현
- WebSocket 기반 실시간 알림
- 읽음/안읽음 상태 관리
- 모바일 푸시 알림 연동
closes #42”
이런 커밋을 쓸 때. 뿌듯하다. “나도 할 수 있네.” 싶다.
근데 이런 커밋은 한 달에 2개 정도다. 나머지는 ‘fix’, ‘update’, ‘asdf’.
그래도 포기 안 한다. 완전히 놓진 않는다. 가끔이라도 제대로 쓴다. 그게 내 마지막 자존심이다.
오늘도 ‘quick fix’ 쳤다. 2시간 걸렸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