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콜 알림음의 심리학: 반사 행동이 된 노트북 오픈

온콜 알림음의 심리학: 반사 행동이 된 노트북 오픈

온콜 알림음의 심리학: 반사 행동이 된 노트북 오픈

어제 영화 보다가 또 했다. 슬랙 알림음. 손이 먼저 움직였다.

영화 일시정지도 안 했다. 노트북 열면서 봤다. 주인공이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안 들렸다. 화면엔 대시보드가 떠 있었다.

“서버 응답 느린데요?”

기획자 메시지였다. 새벽 11시 47분.

파블로프의 개가 된 날

3년 전엔 아니었다.

첫 스타트업 입사했을 때. 슬랙은 그냥 메신저였다. 알림음도 귀여웠다. “띵” 하면 웃으면서 확인했다.

지금은 다르다.

“띵”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노트북 어디 있지? 손이 가방을 뒤진다. 머리는 생각한다. 뭐가 터졌지?

카페에서도 그렇다. 친구 만나서도 그렇다. 화장실에서도 그렇다.

알림음이 울리면 세상이 멈춘다. 나만 움직인다.

파블로프가 개한테 종 울리고 밥 줬다더라. 나중엔 종만 울려도 침 흘렸다고.

나는? 슬랙만 울려도 노트북 연다. 밥 주는 것도 아닌데.

벌 주는 건데.

알림음 종류별 심박수 변화

슬랙 알림음: 보통. 80~90bpm. 확인하면 된다.

PagerDuty 알림음: 빠름. 110~120bpm. 장애다.

전화벨: 최고. 130bpm 찍는다. 심각한 거다.

Apple Watch로 확인했다. 궁금해서.

재미있는 건 이거다. 알림 내용 보기 전에 이미 심박수가 오른다.

소리만으로.

“띵” - 아 뭐지 “띠리링” - 아 큰일났다 전화벨 - 진짜 큰일났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소리가 전부다.

지난주 있었던 일.

새벽 3시. 자고 있었다. PagerDuty 울렸다. 5초 만에 일어났다. 노트북 켰다. 로그인했다. AWS 콘솔 열었다.

10분 뒤 확인했다. 오알람이었다. 모니터링 임계값 설정 실수.

다시 못 잤다. 심장은 아직도 뛰고 있었다.

조건 반사의 일상화

점심 먹는다. 된장찌개 먹는다.

“띵”

젓가락 놓는다. 폰 본다. “괜찮은데요?” 메시지. 기획자가 새 기능 확인했다.

다시 먹는다. 식었다.

“띵”

또 본다. “근데 이거 색깔 바꿀 수 있나요?” 답장 친다. “네 가능합니다.”

찌개는 차갑다. 밥은 식었다. 배는 안 고프다.

친구 만났다. 2년 만이다. 대학 동기.

“야 오랜만이다”

“응 오랜만”

“띵”

폰 본다. “서버 로그 좀 봐주세요.” 본다. 에러 로그다. 심각하진 않다.

“미안 일 때문에”

“괜찮아 답장 해”

3분 뒤.

“띵”

또 본다. 또 답장한다.

친구가 말했다. “너 그냥 일하러 가”

웃었다. 미안했다. 어쩔 수 없었다.

꺼도 켜지는 알림

알림 끈 적 있다. 작년에.

휴가 갔다. 부산. 3일.

“방해 금지 모드 켭니다”

대표한테 말했다. “급하면 전화 주세요.”

첫날은 좋았다. 바다 봤다. 횟집 갔다. 소주 마셨다.

둘째 날 새벽 2시.

전화 왔다. 대표다.

“서버 다운됐어요”

노트북 가져왔다. 혹시 몰라서. 호텔 와이파이로 접속했다. 새벽 5시까지 고쳤다.

다음 날 집 갔다.

방해 금지 모드. 의미 없다. 어차피 전화는 온다.

알림 꺼도 핸드폰은 본다. 30분마다. 뭔가 터졌을까봐.

결국 켰다. 편하다. 기다리는 것보다.

노트북이 없는 공포

지난달 노트북 고장났다. 키보드에 커피 쏟았다.

서비스센터 맡겼다. 3일 걸린다고.

회사 예비 노트북 받았다. 설정이 다르다. 개발환경 없다. 불편하다.

집 가는 길. 가방이 가볍다. 이상하다.

내 노트북이 없다.

불안했다. 장애 나면? 접속 못 하면?

편의점 갔다. 맥주 샀다. 마셨다. 불안하다.

슬랙 확인했다. 폰으로. 아무 일 없다.

또 확인했다. 10분 뒤. 괜찮다.

또 확인했다. 5분 뒤.

잠 안 왔다. 노트북 없이 자는 게 이렇게 불안한가.

다음 날 아침 출근했다. 예비 노트북 들고. 하루 종일 불편했다.

셋째 날 찾아왔다. 수리 완료.

안심했다. 이상하다. 노트북이 편한 게 아니라 없으면 불안한 거다.

반사의 대가

요즘 영화 못 본다.

보면 못 본다. 집중을 못 한다.

슬랙 알림 올까봐. 폰 옆에 둔다. 화면 밝기 키워놓는다. 진동도 켠다.

영화 보는데 폰 본다. 알림 없다. 다시 본다. 주인공이 누구였지?

뒷부분 놓쳤다. 되감기 한다. 또 폰 본다.

결국 끈다. 이해 못 했다.

넷플릭스 추천 알고리즘. “시청 중인 콘텐츠” 100개. 다 못 봤다.

친구들 연락 줄었다.

“밥 먹자” 약속 잡으면 “일 있을 수도” 라고 답한다.

나중엔 안 잡는다. 귀찮은 거다. 나한테.

만나도 폰 본다. 노트북 들고 간다. 일 할 수도 있으니까.

친구들도 안다. “너 오늘도 일하겠네” 웃는다. 맞다.

혼자가 편하다. 폰 봐도 미안하지 않다. 노트북 펴도 눈치 안 본다.

건강검진 결과 나왔다. 의사가 말했다.

“스트레스 수치가 높네요”

안다. 심장도 안다. Apple Watch도 안다.

“수면 시간 부족합니다”

안다. 알림음 때문이다.

“운동하세요”

못 한다. 헬스장 가도 폰 본다.

꺼지지 않는 스위치

이직 고민한다. 요즘.

조건 본다. “온콜 로테이션” 있으면 좋다. 나만 하는 건 아니니까.

“장애 대응 매뉴얼” 있으면 좋다. 나만 아는 건 아니니까.

“개발자 3명 이상” 있으면 좋다. 나 혼자는 아니니까.

근데 생각한다.

거기 가도 똑같을 것 같다.

알림음은 들린다. 온콜은 돈다. 장애는 난다.

노트북은 옆에 있다. 손은 자동으로 움직인다.

파블로프 개는 나중에 어떻게 됐을까.

종 소리 안 들려도 침 흘렸을까.

나는 그럴 것 같다.

슬랙 지워도 폰 본다. 알림 꺼도 확인한다. 노트북 없어도 불안하다.

반사는 끄기 힘들다.

스위치가 고장났다. 켜짐만 있다. 꺼짐은 없다.

내일도 출근한다. 노트북 챙긴다. 폰 충전한다.

알림음 기다린다. 안 울리길 바라면서. 울릴 거 알면서.


파블로프 개는 선택권이 없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