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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의 요청이 기획서가 아닐 때: 개발자가 기획자가 된다

기획자의 요청이 기획서가 아닐 때: 개발자가 기획자가 된다

기획자의 요청이 기획서가 아닐 때: 개발자가 기획자가 된다 오늘도 슬랙이 울렸다 오전 10시 37분. 슬랙 알림. "OOO님, 로그인 화면에 소셜 로그인 추가해주세요~ 급해요!" 기획서? 없다. 화면 설계? 없다. 어떤 소셜? 모른다. 이게 3년차 개발자의 일상이다.기획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받는다 처음엔 물었다. "자세한 기획서 있나요?" 돌아오는 답: "아 그냥 카카오톡처럼요!" 카카오톡처럼. 네이버처럼. 쿠팡처럼. 그게 얼마나 복잡한지 아는가. 모른다. 그래서 나한테 물어본다. 결국 내가 묻는다:어떤 소셜 로그인? (구글, 카카오, 네이버, 애플?) 기존 계정이랑 연동은? (이메일 중복이면?) 프로필 정보는 어디까지? (이름만? 프사도?) 약관 동의는? (필수, 선택 구분은?) 에러 처리는? (소셜 연동 실패하면?)이게 개발자 질문인가, 기획자 질문인가.대답을 듣고 나서도 기획은 없다 대답은 온다. 하지만 여전히 애매하다. "일단 카카오, 구글만! 나머지는 나중에요." 나중에. 이 단어가 제일 무섭다. "연동은... 음, 이메일 같으면 하나로 합쳐주세요!" 합쳐주세요. 어떻게? 자동으로? 확인하고? 덮어쓰기? 병합? 결국 내가 정한다. 기획서를 내가 쓴다. 노션 켜서:사용자 플로우 그린다 예외 케이스 정리한다 UI 와이어프레임 그린다 (Figma까지 켠다) API 스펙 설계한다 DB 스키마 수정안 작성한다이거 다 하고 나면 2시간. 개발은 아직 한 줄도 안 했다. 결국 내가 PM이 된다 기획자에게 보낸다. "이렇게 하면 될까요?" 답: "오 좋아요! 그렇게 해주세요~" ...내가 물어본 건데 내가 답을 정했다. 이게 반복되면 학습한다. 아예 안 물어본다. 요청 오면:내가 바로 기획 완성 30분 안에 간단히 검증 바로 개발 시작더 빠르다.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사라진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책임은 개발자가 진다 기능 출시 후 2일. "아 이거 왜 이렇게 했어요? 이메일 덮어쓰기는 좀..." 내가 정했는데 내가 혼난다. "기획서에 없었잖아요." 이 말이 안 먹힌다. 왜냐면 애초에 기획서가 없었으니까. "그럼 물어보지 그랬어요." 물어봤다. 답이 애매했다. 그래서 내가 정했다. 이 과정을 설명하면 "아 그래도..." 로 끝난다. 결국: 기획자가 한 건 아이디어. 나머지는 다 내가 했다. 그런데 책임은 50:50이 아니다. 코드 짠 사람이 진다. 개발 시간은 누가 보상하나 기획하는 데 2시간. 개발하는 데 3시간. 총 5시간짜리 작업. 그런데 산정은? "개발 3시간이면 되죠?" 기획 시간은 안 쳐준다. 왜? 원래 기획자 일이니까. 그럼 나는 뭐지. 개발자인데 기획도 하는 사람. 풀스택의 의미가 확장된다:프론트 + 백엔드 (여기까진 예상함) DevOps (그래 이것도 인정) 디자인 (Figma 쓸 줄 알게 됨) 기획 (이건 예상 못 함) QA (테스트도 나) CS (장애 대응도 나)이게 연봉 4800에 스톡옵션 0.5%로 해결되는가. 그래서 기획 실력이 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획을 잘하게 됐다. 사용자 플로우가 보인다. 예외 케이스가 보인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이런 문제 생긴다"가 보인다. 실제로 기획자보다 더 디테일하게 기획한다. 왜냐면:직접 구현할 사람이니까 장애 터지면 내가 고칠 거니까 나중에 수정하면 내가 할 거니까이게 장점인가 단점인가. 이력서에 쓸 수 있다: "기획부터 배포까지 전 과정 경험" 실제 의미: "혼자 다 했다" 경계가 사라진다 어느 순간부터 역할 구분이 없다. 회의에서:"이 기능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나한테 물어봄 "이 화면 배치 괜찮을까요?" → 나한테 물어봄 "이 데이터 어떻게 보여줄까요?" → 나한테 물어봄대표님은 좋아한다. "역시 풀스택!" 기획자는 편해한다. 나한테 물어보면 되니까. 나는? 피곤하다. 개발만 하고 싶은데 기획 회의에 2시간. 기획만 하면 되나? 아니다. 개발도 해야 한다. 결국 둘 다 한다. 시간은 그대로다. 기획자는 정말 필요 없는가 가끔 생각한다. 기획자 없어도 되는 거 아닌가. 어차피 내가 다 하는데. 그런데 아니다. 기획자는 필요하다. 제대로 된 기획자면:시장 조사한다 경쟁사 분석한다 사용자 인터뷰한다 데이터 분석한다 우선순위 정한다 로드맵 그린다나는 이거 못 한다. 시간도 없고 역량도 없다. 문제는 "제대로 된 기획자"가 없다는 것. 12명 스타트업에서 기획자는 '주니어 1명'. 그 사람도 처음이라 헤맨다. 나한테 물어본다. 결국 내가 알려준다. 기획하는 법을. 이게 맞나 싶다. 이직할 때 뭐라고 쓰지 이력서 쓸 때마다 고민이다. "기획부터 개발, 배포, 운영까지 전체 프로세스 담당" 멋있게 들린다. 실제로는 "혼자 다 함". 면접에서 물어본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솔직하게 말한다: "명확한 기획 없이 개발하는 것" 그럼 또 묻는다: "그럼 어떻게 해결했나요?" "제가 기획했습니다." 이게 플러스인가 마이너스인가. 모르겠다. 어떤 회사는 좋아한다: "주도적이네요!" 어떤 회사는 걱정한다: "프로세스 없는 곳이었나보네요." 둘 다 맞다. 결국 나는 무엇인가 3년차 풀스택 개발자. 이력:React, Node.js, PostgreSQL, AWS Figma, Notion, 기획 문서 작성 프로젝트 매니징, 우선순위 조정 사용자 플로우 설계, 와이어프레임 DB 설계, API 설계 프론트 개발, 백엔드 개발 배포, 모니터링, 장애 대응 CS, 버그 수정이게 한 사람이 할 일인가. 명함에는 "Developer"라고 써있다. 실제로는 "Developer + PM + Designer + DevOps + QA" 연봉은 Developer 하나 값. 이게 스타트업이다. 이게 1인 개발자의 현실이다. 그래도 배우긴 했다 긍정적으로 보면: 기획 능력 생겼다. 이제 Product Sense가 있다. 사용자 관점에서 생각한다. "이거 쓰기 불편한데?" 가 보인다. 기술 선택할 때도 다르다. "이 기술이 좋다"가 아니라 "이 문제에 이 기술이 맞다". 전체를 본다. 부분이 아니라 흐름을. 이게 시니어 개발자로 가는 길인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제 기획서 없어도 개발한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언제까지 이럴 건가 채용 공고 올린 지 6개월. "주니어 개발자 구합니다" 지원 없다. 면접 본 사람 2명. 안 뽑았다. 이유: "같이 일할 사람 없어서" 나밖에 없으니까 코드 리뷰 해줄 사람 없다. 가르쳐줄 시간도 없다. 기획도 해야 하고 개발도 해야 하는데. 결국 안 뽑는다. 나 혼자 한다. 이게 계속될수록 떠나기 어려워진다. 내가 없으면 서비스 터진다. 기획도 개발도 다 멈춘다. 책임감이 족쇄가 된다. 대안은 있는가 생각해봤다. 몇 가지 선택지:계속 한다장점: 안정적 (?) 단점: 번아웃이직한다장점: 제대로 된 프로세스 경험 단점: 여기 서비스는?프로세스 바꾼다장점: 근본 해결 단점: 안 바뀜 (시도해봄)현실은 1번. 계속한다. 왜? 떠나기 미안해서. 이게 맞나 싶다. 내 커리어인데. 다음 회사에서는 다짐한다. 다음 회사는:기획서 있는 곳 코드 리뷰 되는 곳 온콜 로테이션 도는 곳 개발자가 2명 이상인 곳최소한의 기준이다. 이게 사치인가. 이력서에 쓴다: "명확한 요구사항 정의와 협업 프로세스가 있는 환경을 선호합니다" 번역하면: "제발 기획서 좀 주세요" 그래도 남는 것 3년 동안: 기획 문서 87개 작성했다. 내가. 와이어프레임 120개 그렸다. Figma로. 사용자 플로우 42개 설계했다. 이게 개발자 포트폴리오에 들어가나? 모르겠다. 그래도 배웠다:문제를 정의하는 법 솔루션을 설계하는 법 우선순위를 정하는 법 커뮤니케이션하는 법 (혼자지만)이게 쓸모있을까. 아마도. 다음 회사에서는 "기획 잘 아는 개발자"가 될 것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나중에 알겠지.결국 나는 개발자다. 기획도 하는 개발자.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