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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스택
- 09 Dec, 2025
입버릇 '제가 볼게요': 모든 문제의 흡수 지점이 되어버린 나
입버릇 '제가 볼게요': 모든 문제의 흡수 지점이 되어버린 나 "제가 볼게요." 오늘도 이 말을 했다. 세 번째다. 아침 10시, "이 버그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제가 볼게요." 점심 1시, "DB 느린데 최적화 가능한가요?" → "제가 볼게요." 오후 4시, "결제 모듈 이상한 것 같은데..." → "제가 볼게요." 이게 언제부터였나. 입사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처음엔 프론트만 하려고 들어왔다. 그런데 백엔드 개발자가 퇴사했다. 대표가 물었다. "Node.js 할 줄 아시죠?" 할 줄 안다고 했다. 실수였다.흡수 지점의 탄생 처음엔 나쁘지 않았다. "이것도 할 줄 아세요?" "네, 해봤습니다." "저것도 가능하세요?" "해보겠습니다." 배우는 게 좋았다. 풀스택이라는 타이틀도 괜찮았다.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기술 스택이 늘어났다. React, Node.js, PostgreSQL, Redis, Docker, AWS. 뭐든 할 수 있다는 느낌. 개발자로서 성장하는 기분. 그런데 6개월이 지나자 달라졌다. "이거 누가 해요?" → 나 "저거 담당자가 누구죠?" → 나 "이 문제 아는 사람?" → 나 모든 질문의 끝이 나였다. 프론트 버그도 나, 백엔드 에러도 나, DB 쿼리 최적화도 나, 배포도 나, 모니터링도 나. 심지어 디자인 시안 검토도 "개발자 의견 좀 들어볼까요?" 하면 나였다. 입버릇이 됐다. "제가 볼게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개발자가 없으니까.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까. 해결할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오늘 중으로'라는 주문 더 문제인 건 다음 말이었다. "오늘 중으로 될 거예요." 이것도 입버릇이 됐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다. 월요일 아침, 대표가 물었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결제 모듈 붙일 수 있어요?" "네, 될 거예요." 화요일 점심, 기획자가 물었다. "이 기능 이번 주 안에 나올 수 있나요?" "오늘 중으로 확인해드릴게요." 수요일 오후, 디자이너가 물었다. "이 UI 수정 언제까지 가능해요?" "내일까지 될 거예요." 목요일 저녁, 나는 터미널 앞에 앉아 있었다. 해야 할 일 목록을 봤다.결제 모듈 연동 (50% 완료) 신규 기능 개발 (30% 완료) UI 수정 7건 (0% 완료) 기존 버그 수정 3건 (0% 완료) API 성능 개선 (계획만)전부 "될 거예요"라고 말한 것들이었다. 시계를 봤다. 오후 7시. 퇴근 시간은 지났다. 에너지 드링크를 땄다. 두 번째였다. "오늘 중으로" 해야 했다.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새벽 3시에 퇴근했다. 다음 날 11시에 출근했다. 대표가 물었다. "어제 말한 거 됐어요?" "네, 됐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잠을 안 자면 됐다.24시간 온콜 시스템 더 심각한 건 따로 있었다. 장애 알림이었다. 새벽 2시, 핸드폰이 울렸다. 슬랙 알림. "서버 응답 없음." 눈을 떴다. 노트북을 켰다. AWS 콘솔에 접속했다. EC2 인스턴스가 죽어 있었다. 재시작했다. 다시 잤다. 새벽 4시, 또 울렸다. "DB 연결 오류." 일어났다. RDS를 확인했다. 커넥션 풀이 터졌다. 코드를 수정했다. 배포했다. 알람을 껐다. 아침 7시, 또 울렸다. 이번엔 전화였다. 대표였다. "고객이 결제가 안 된대요." 침대에서 일어났다. 노트북으로 로그를 확인했다. PG사 API가 타임아웃이었다. 재시도 로직을 추가했다. "지금 됩니다." 전화를 끊었다. 10시에 출근했다.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고생했어요. 오늘은 일찍 퇴근하세요." 일찍 퇴근이 뭔지 몰랐다. 7시에 나갔다. 집에 도착했다. 9시였다. 씻고 침대에 누웠다. 10시에 슬랙이 울렸다. "급한 건데요, 내일 아침까지 이거 가능한가요?" 노트북을 다시 켰다. 혼자라는 것의 무게 문제는 간단했다. 나 말고 없었다. 코드리뷰를 해줄 사람이 없었다. 내 코드가 맞는지 틀린지 몰랐다. 스택오버플로우만 믿었다. GPT한테 물어봤다. 그래도 확신이 없었다. 페어 프로그래밍을 할 사람이 없었다. 막히면 혼자 끙끙댔다. 3시간 동안 버그를 찾았다. 오타였다. 누군가 옆에서 봤으면 5분이면 찾았을 것이다. 휴가를 갈 수 없었다. 작년에 3일 휴가를 냈다. 이틀째 되는 날 전화가 왔다. "서버가 안 되는데요." 휴가지에서 노트북을 켰다. 나머지 하루는 호텔에서 코딩했다. 백업이 없었다. 내가 아프면? 내가 사고 나면? 서비스가 터진다. 그 생각에 병원도 못 갔다. 작년에 독감 걸렸을 때도 재택으로 일했다. 38도 열이 나는데 코드를 짰다. 이게 맞나 싶었다. 채용 공고의 빈자리 6개월 전부터 채용 공고를 냈다. "주니어 개발자 채용" "경력 1년 이상" "풀스택 환영" 지원자는 많았다. 면접을 봤다. 문제는 내가 면접을 봐야 한다는 거였다. 화요일 오후 2시, 면접 일정이 잡혔다. 오전에 급한 버그가 터졌다. 고객사 데모가 3시였다. 면접을 미뤘다. 목요일 오후 4시, 다시 잡았다. 오후 1시에 서버 장애가 났다. 원인을 찾는데 3시간 걸렸다. 면접 시간에 장애를 해결하고 있었다. 지원자한테 사과 메일을 보냈다. 다음 주 월요일, 세 번째 시도. 이번엔 면접을 봤다. 30분 동안 기술 질문을 했다. "우리 서비스는요..." 설명하다가 슬랙이 울렸다. "급한 건데요." 면접 중간에 노트북을 켰다. 그 지원자는 합격 통보를 거절했다. 당연했다. 나라도 안 왔을 것이다. 지금까지 15명을 면접 봤다. 합격 통보를 한 사람이 4명. 실제로 입사한 사람은 0명이었다. "연봉 조건이 안 맞아요", "업무 범위가 너무 넓어요", "다른 곳으로 결정했습니다." 다 이해했다. 여기 오면 나처럼 된다. 누가 오겠나. 기술 부채라는 시한폭탄 코드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6개월 전에 짠 코드였다. 주석이 없었다. 변수명이 'temp', 'data', 'result'였다. 뭐 하는 코드인지 몰랐다. 내가 짠 코드인데. 급하게 짠 코드들이었다. "오늘 중으로"를 지키려고 막 짰다. 테스트 코드? 없었다. 리팩토링? 시간이 없었다. 일단 돌아가게만 만들었다. 그게 쌓였다. 이제는 새 기능을 추가할 때마다 무서웠다. 어디가 터질지 몰랐다. A를 수정하면 B가 깨졌다. B를 고치면 C가 망가졌다. 스파게티 코드의 정석이었다. 리팩토링을 하고 싶었다. 주말에 시도했다.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시작했다. 오후 3시에 슬랙이 울렸다. "고객사 데모 준비 됐나요?" 월요일이었다. 준비 안 됐다고 말할 수 없었다. 리팩토링을 멈췄다. 데모 준비를 했다. 일요일 저녁에 다시 시도했다. 밤 11시에 장애 알림이 왔다. 리팩토링하다가 뭔가 건드린 것 같았다. 롤백했다. 리팩토링 브랜치를 지웠다. 기술 부채는 계속 쌓였다. 언젠가 터질 것이다. 그때 나는 여기 있을까. 책임감이라는 올가미 이직을 생각했다. 여러 번. 작년 9월, 채용 공고를 봤다. "시니어 백엔드 개발자", "연봉 7000만원~", "워라밸 보장". 이력서를 썼다. 저장만 하고 보내지 않았다. 12월, 다시 봤다. "풀스택 개발자", "스타트업 경험자 우대". 이력서를 업데이트했다. 이번에도 안 보냈다. 올해 2월, 친구가 연락 왔다. "우리 회사 오면 어때?" 조건이 좋았다. 연봉도 오르고 팀도 있다. 고민했다. 거절했다. 왜? 책임감 때문이었다. 내가 떠나면 서비스가 터진다. 진짜로. 코드를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 인수인계? 누구한테? 신입이 오면? 그 사람이 적응할 때까지 몇 개월이 걸린다. 그동안 누가 서비스를 유지하나. 대표한테 미안했다. 믿고 맡겼는데. 회사가 어려운 거 알았다. 직원이 12명밖에 안 됐다. 투자 유치도 힘들다고 했다. 개발자 연봉을 올려줄 여유가 없었다. 동료들한테도 미안했다. 내가 떠나면 그들도 힘들어진다. 기획자는 개발 일정을 못 잡는다. 디자이너는 구현 가능한지 물어볼 사람이 없다. 마케터는 기능 개발을 못 한다. 고객한테도 미안했다. 서비스를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매일 쓰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떠나면 그들은? 그래서 못 떠났다. 책임감이 올가미가 됐다. 마지못한 '제가 볼게요' 요즘은 이 말을 할 때 감정이 없다. "제가 볼게요." 자동으로 나왔다. 반사 작용이었다.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어차피 내가 봐야 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오늘 오후, 기획자가 물었다. "이 버그 급한데, 오늘 중으로 될까요?" "제가 볼게요." 3초도 안 걸렸다. 무슨 버그인지도 안 봤다. 일단 받았다. 어차피 해야 할 것이다. 저녁, 대표가 물었다. "내일 미팅에서 데모 보여줘야 하는데, 이 기능 추가 가능해요?" "오늘 중으로 될 거예요." 시계를 안 봤다. 오후 6시였다. 퇴근 시간이었다. 그래도 말했다. "될 거예요." 습관이었다. 밤 11시, 아직 회사였다. 기능을 추가하고 있었다. 테스트를 돌렸다. 버그가 나왔다. 고쳤다. 또 버그가 나왔다. 고쳤다. 새벽 2시, 집에 왔다. 내일 아침 미팅이 9시였다. 6시간 자면 됐다. 괜찮았다. 어제도 그랬다. 에너지 드링크를 마셨다. 오늘 네 번째였다."제가 볼게요." 오늘도 다섯 번 말했다. 내일은 몇 번 말하게 될까.
- 08 Dec, 2025
에너지 드링크 하루 2캔, 내 생명줄
에너지 드링크 하루 2캔, 내 생명줄 아침 9시, 첫 번째 캔 눈 뜨자마자 손이 간다. 침대 옆 테이블. 핫식스 250ml. 따는 소리가 익숙하다. 푸슈. 첫 모금. 탄산이 목을 긁는다. 이제 시작이다. 씻지도 않고 노트북 켠다. 슬랙 확인. 새벽 3시에 온 메시지가 있다. "내일 아침까지 이거 급한데요." 내일이 오늘이다. 웃긴다.에너지 드링크를 마시기 시작한 게 언제였나. 정확히 기억난다. 2년 전. 첫 스타트업 입사 2주차. "개발자면 밤샘 정도는 해야지."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농담 같았다. 진담이었다. 그날 밤 11시까지 일했다. 집에 가니 1시. 씻고 누우니 2시. 다음날 9시 출근. 6시간 잤다. 졸렸다. 동료가 건넸다. 핫식스. "이거 먹으면 깬다." 마셨다. 30분 후 정신이 들어왔다. 신기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점심 먹고, 두 번째 캔 12시 반. 점심은 김밥천국. 돈까스 6500원. 먹으면서 노트북 본다. AWS 비용 알림. 또 올랐다. RDS 인스턴스가 문제다. 쿼리 최적화 해야 하는데. "오늘 해야지." 이미 2주째 미루는 중이다. 1시. 사무실 복귀. 졸음이 온다. 점심 먹으면 당연하다. 오후 2시가 고비다. 냉장고를 연다. 레드불. 두 번째 캔.카페인 함량을 아냐. 핫식스 250ml: 62.5mg 레드불 250ml: 80mg 하루 두 캔이면 140mg 정도. 의학 자료 찾아봤다. 성인 권장량 400mg 이하. "아직 괜찮네." 이게 내 논리다. 근데 커피도 마신다. 아메리카노 2잔. 카페인 200mg 추가. 합계 340mg. 권장량 안쪽이다. "문제없어." 스스로를 속인다. 오후 4시, 슬럼프 카페인이 떨어진다. 몸이 안다. 집중력이 흐려진다. 코드가 안 보인다. 세 번째 캔을 고민한다. "참자. 저녁에 마시자." 10분 버틴다. 안 된다. 냉장고로 간다. 몬스터 에너지 355ml. 카페인 120mg. "오늘만." 매일 하는 말이다.친구가 물었다. 작년에. "그거 몸에 안 좋다며?" 안다. 당연히 안다. "끊을 거야." 3개월째 못 끊었다. 이유가 있다. 끊으면 일을 못 한다. 시도해봤다. 2주 전. "이번엔 진짜 끊는다." 첫날. 오전 11시부터 졸렸다. 코드 3줄 쓰는데 30분 걸렸다. 머리가 안 돌아갔다. 점심 먹고 더 심해졌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오후 3시. 대표가 불렀다. "이 기능 오늘 안에 되죠?" "...네." 냉장고로 갔다. 포기했다. 건강검진 결과지 지난달 받았다. 회사 단체 검진. 간 수치. 경계. 혈압. 높음. 수면의 질. 불량. 의사가 말했다. "스트레스 관리하세요. 카페인 줄이시고요." "네." 대답만 했다. 다음날부터 똑같았다. 아침 1캔, 점심 후 1캔. 바꿀 수가 없었다. 일정이 그대로인데. 혼자 하는 개발. 마감은 촘촘하다. 속도를 낼 방법은 카페인뿐이다. 아니, 그렇게 믿는다. 작년에 읽었다. 어떤 개발자 블로그. "카페인은 빚이다. 지금 집중력을 미래에서 빌려오는 것." 맞는 말이다. 안다. 근데 미래는 나중 문제다. 지금이 급하다. 오늘 배포 못 하면 내일 회의에서 까인다. 내일 회의에서 까이면 다음 주 일정이 더 빡빡해진다. 악순환이다. 끊을 타이밍이 없다. 밤 10시, 마지막 고민 퇴근 준비한다. 가방에 노트북 넣는다. 집에서 좀 더 해야 한다. 배포 전에 테스트. 냉장고를 본다. 레드불 1캔 남았다. "가져갈까." 고민한다. 5초. 가방에 넣는다. 집에 가는 지하철. 캔을 꺼낸다. 차갑다. 아직 안 땄다. "집 가서 마시자. 진짜 급할 때만." 11시. 집 도착. 노트북 켠다. 테스트 돌린다. 에러 3개. "씨발." 캔을 딴다. 푸슈. 마신다. 익숙한 맛이다. 새벽 2시까지 작업한다. 배포 완료. 침대에 눕는다. 잠이 안 온다. 카페인 때문이다. 당연하다. 유튜브를 켠다. 아무거나 본다. 4시가 돼서야 잔다. 6시간 후 알람이 울린다. 손이 또 간다. 침대 옆 테이블. 새로 산 핫식스 6캔 박스. "오늘도 화이팅."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게 정상인가 가끔 생각한다. 이게 정상적인 삶인가. 20대 후반. 건강검진에서 경고. 에너지 드링크 없으면 일 못 함. 주말에도 마신다. 습관이 됐다. 친구들 만나도 들고 간다. "너 그거 또 마셔?" "어. 몸이 찾네." 농담처럼 말한다. 웃긴 게 아니다. 전 회사 선배가 말했다. 2년 전. "개발자는 체력이다. 건강 챙겨." 못 챙긴다. 방법을 모른다. 일을 줄일 수 없다. 혼자 하는데. 카페인을 끊을 수 없다. 대안이 없다. 운동? 시간이 없다. 수면? 부족하다. 알고 있다. 건강한 식습관? 웃기는 소리다. 근데 재밌는 게 있다. 회사 냉장고 에너지 드링크. 내가 90% 먹는다. 나머지 사람들은 가끔 한 캔. 나는 하루 2~3캔. 기획자가 물었다. 지난주. "이거 누가 이렇게 먹어요?" "...저요." "헐. 건강 괜찮아요?" "괜찮아요." 거짓말이다. 끊을 수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이직하면 나아질까. 그것도 모른다. 대기업 가면 야근 없을까. 아니다. 거기도 바쁘다. 스타트업이 문제가 아니다. 개발 문화가 문제다. "빨리빨리." "오늘 안에." "내일 아침까지." 이게 당연한 세상이다. 버티려면 카페인이 필요하다. 다들 마신다. 커피든 드링크든. 나만 유난히 많이 마실 뿐이다. 언젠가 끊고 싶다. 30살 되기 전에. 아니면 결혼하기 전에. 아니면... 몸이 망가지기 전에. 근데 지금은 아니다. 오늘 마감이 있다. 내일 회의가 있다. 다음 주 배포가 있다. "나중에." 또 미룬다. 냉장고에 캔이 4개 남았다. "내일 사야겠다." 이미 장바구니에 담아뒀다. 핫식스 24캔. 무료배송.오늘도 캔을 딴다. 푸슈. 이게 내 삶이다.
- 03 Dec, 2025
기획서가 없다: 슬랙 메시지로 시작되는 개발의 악순환
기획서가 없다: 슬랙 메시지로 시작되는 개발의 악순환 오전 10시 23분, 슬랙 알림 출근했다. 커피 마시려는데 슬랙이 울린다. "@정민 님, 유저들이 검색 기능이 불편하다는 피드백이 있어요. 개선 가능할까요?" 가능하냐고? 당연히 가능하지. 근데 뭘 어떻게 개선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어떤 부분이 불편한 건가요?" "음... 그냥 전반적으로요. 네이버처럼 자동완성도 있으면 좋을 것 같고요." 네이버. 개발자 4000명 있는 곳이랑 비교하는구나. "자동완성 추가하려면 검색어 로그 수집, 인덱싱, API 구축 필요한데 일정이..." "급한 건 아니에요! 다음 주까지만요 ^^" 다음 주. 오늘이 금요일인데.기획서는 없고, 레퍼런스는 넘친다 점심 먹고 왔다. 슬랙 메시지 12개. 전부 "참고 이미지" 링크다. 당근마켓, 토스, 배민, 무신사, 에어비앤비. "이런 느낌이면 좋겠어요!" 느낌. 개발을 느낌으로 하나. 피그마 열었다. 기획 문서는 없다. 화면 정의서도 없다. 요구사항 정리서도 없다. 있는 건 슬랙 대화 히스토리 347개. 스크롤 올리면서 정리했다.검색창 위치 변경 (3주 전 대화) 필터 기능 추가 (2주 전 대화) 실시간 검색어 순위 (어제 대화) 음성 검색 (오늘 새벽 2시 대화, 누가 새벽에)요구사항 4개. 우선순위는 모른다. 다 "급해요". 노션에 정리했다. 제목: "검색 기능 개선 (추정)". 추정이라고 쓴 이유는 내가 추측한 거라서. 대표님한테 공유했다. "정민님이 정리를 잘하시네요!" 내가 기획자냐.디자인 없으면 내가 한다 요구사항 정리했다. 이제 디자인이다. 우리 디자이너? 퇴사했다. 3개월 전에. 채용 중이다. 6개월째. "정민님, 프론트 하시니까 UI는 대충 넣어주세요. 나중에 디자이너 오면 수정하면 되죠." 대충. 나중에. 개발자가 제일 듣기 싫은 단어 2개. 피그마 열었다. 디자인 시스템? 없다. 컬러 팔레트? 없다. 폰트 가이드? 없다. 기존 화면 캡처해서 색깔 추출했다. #3B82F6, #10B981, #F59E0B. 파란색, 초록색, 주황색. 통일성은 없어 보이지만 뭐. 버튼 디자인했다. 라운드는 8px. 왜 8px? 다른 버튼들이 8px이니까. 검색창 디자인했다. 높이는 48px. 왜 48px? 48이 예쁘니까. 아이콘? 구글에서 무료 아이콘 찾았다. "free search icon png". 라이선스 확인? 나중에. 2시간 걸렸다. 디자이너는 이런 거 하루 종일 하는구나. 대표님한테 공유했다. "오 괜찮은데요? 디자이너 안 뽑아도 되겠어요 ㅋㅋ" 농담이겠지. 농담이라고 해줘.개발 시작, 그리고 변경사항 디자인 끝. 이제 개발이다. 프론트부터. React 컴포넌트 만들었다. SearchBar, AutoComplete, FilterModal. API 설계했다. GET /search?query=. POST /search/log. 로그는 나중에 분석용. 백엔드 작업. Node.js, Express. 라우터 만들고, 컨트롤러 만들고, 서비스 로직 만들고. PostgreSQL 테이블 설계. search_logs, search_keywords, search_rankings. 인덱스 추가. query 컬럼에 GIN 인덱스. 한글 검색 성능 개선용. 작업 중이다. 집중하고 있다. 슬랙 알림. "정민님, 검색 결과를 카드 형태로 보여줄 수 있을까요? 리스트보다 이쁠 것 같아요." ...지금? "지금 리스트 형태로 개발 중인데, 카드로 바꾸면 레이아웃 전체를..." "아 그럼 리스트요! 괜찮아요 ^^" 10분 뒤. "역시 카드가 나을 것 같아요. 요즘 트렌드가 카드잖아요." 카드로 바꿨다. 컴포넌트 3개 수정. CSS 전부 다시. 30분 뒤. "리스트가 정보 한눈에 보기 좋네요. 리스트로 할까요?" 노트북 덮고 싶다. "둘 다 만들어서 대표님이 선택하시죠." 결국 둘 다 만들었다. 토글 버튼도 만들었다. 개발 시간 2배. 테스트는 프로덕션에서 새벽 2시. 배포 준비 끝났다. 테스트 서버? 없다. 예산 부족. AWS 인스턴스 하나로 운영 중. 로컬에서 테스트했다. 문제없다. 내 로컬에선. 배포했다. Docker 이미지 빌드. ECR 푸시. ECS 업데이트. 5분 뒤. 슬랙 알림. 대표님: "검색이 안 돼요." 심장 멈췄다. 로그 확인. DB 커넥션 에러. 동시접속 제한 초과. 로컬에선 유저 1명. 프로덕션은 유저 200명. 커넥션 풀 설정 수정. 긴급 핫픽스. 재배포. 10분 뒤. 정상화. 대표님: "고생하셨어요! 내일 점심 제가 쏠게요 ^^" 점심. 8000원. 내 2시간 = 8000원. 기획서 없는 개발의 대가 월요일. 주간회의. "검색 기능 잘 나왔어요! 근데 필터가 좀 복잡하다는 피드백이..." 또 시작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복잡한가요?" "음... 그냥 전체적으로요. 좀 더 직관적이면 좋겠어요." 직관적. 추상적인 단어 1위. "레퍼런스 있으세요?" "쿠팡이요! 쿠팡처럼요." 쿠팡. 개발자 2000명. 지난 3일간 작업 내역:기획 추정: 4시간 디자인: 2시간 프론트 개발: 8시간 백엔드 개발: 6시간 DB 작업: 3시간 배포 및 핫픽스: 2시간 총 25시간문서화된 것:없음다음에 누가 수정하면? 슬랙 히스토리 뒤져야 함.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아무도 모름. 기술 부채 +1. 악순환의 시작 기획서 없는 개발.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다. 요구사항이 명확하지 않으니 개발자가 추측한다. 추측이니 틀릴 수 있다. 틀리면 다시 만든다. 디자인 없으니 개발자가 만든다. 일관성 없다. 나중에 디자이너 오면 전부 다시. 테스트 환경 없으니 프로덕션이 테스트다. 장애 난다. 유저가 테스터. 문서 없으니 인수인계 불가능. 채용해도 온보딩 불가능. 결국 혼자. "정민님이 다 아시잖아요." 라는 말이 가장 무섭다. 내가 모든 걸 알아야 하는 구조.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구조. 휴가? 불가능. 퇴사? 미안함. 기획자한테 말했다. "기획서 좀 써주세요." "네! 다음부터요!" 다음은 오지 않는다. 급한 게 먼저니까. 오늘도 슬랙이 운다 오후 5시. 퇴근 1시간 전. 슬랙 알림. "@정민 님, 결제 페이지 UI 좀 바꿔주실 수 있나요? 급해요." 기획서? 없다. 디자인? 없다.요구사항? "그냥 이쁘게요." 노트북 열었다. 피그마 열었다. VSCode 열었다. 에너지 드링크 땄다. 세 번째. 입버릇처럼 말했다. "제가 볼게요." 내일도 모레도. 슬랙 메시지로 시작되는 개발. 기획서는 오늘도 없다.결국 내가 기획자고, 디자이너고, 개발자다. 그리고 테스터. 풀스택이 아니라 풀포지션이지.